우리는 '공론장'을 가진 적이 있긴 한가
하버마스가 말한 부르주아 공론장의 원형은 18세기 런던의 커피하우스였다. 신분과 직업을 잠시 괄호치고, 오직 더 나은 논거가 이기는 공간. 물론 그건 백인 남성 유산계급에 한정된 미화된 기억이라는 비판도 정당하다. 그런데 나는 요즘 다른 질문이 더 절실하다. 우리는 그 비슷한 것이라도 가진 적이 있는가.
광장에 사람이 모이면 공론장이 되는 게 아니다. 광화문에 100만이 모여도, 각자가 이미 정해진 답을 들고 와서 같은 구호를 외치고 흩어지면 그건 집회지 토론이 아니다. 아렌트가 정치의 본질로 본 건 '복수성(plurality)' 속에서 말과 행위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었는데, 지금 우리의 온라인 공간은 복수성을 견디지 못한다. 다른 의견은 곧 적의 신호로 읽힌다.
나는 이게 단순히 '예의가 없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조의 문제다. 알고리즘은 분노가 체류시간을 늘린다는 걸 알고, 우리는 동의보다 격분에 더 빨리 반응한다. 이 판 위에서 '근거 중심으로 점잖게 토론하자'는 건 거의 반(反)시장적 제안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이런 공간이 지속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봤다. 규칙인가, 사람인가, 아니면 애초에 모이는 사람의 밀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