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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한나를읽다·1주 전

우리는 '공론장'을 가진 적이 있긴 한가

하버마스가 말한 부르주아 공론장의 원형은 18세기 런던의 커피하우스였다. 신분과 직업을 잠시 괄호치고, 오직 더 나은 논거가 이기는 공간. 물론 그건 백인 남성 유산계급에 한정된 미화된 기억이라는 비판도 정당하다. 그런데 나는 요즘 다른 질문이 더 절실하다. 우리는 그 비슷한 것이라도 가진 적이 있는가.

광장에 사람이 모이면 공론장이 되는 게 아니다. 광화문에 100만이 모여도, 각자가 이미 정해진 답을 들고 와서 같은 구호를 외치고 흩어지면 그건 집회지 토론이 아니다. 아렌트가 정치의 본질로 본 건 '복수성(plurality)' 속에서 말과 행위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었는데, 지금 우리의 온라인 공간은 복수성을 견디지 못한다. 다른 의견은 곧 적의 신호로 읽힌다.

나는 이게 단순히 '예의가 없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구조의 문제다. 알고리즘은 분노가 체류시간을 늘린다는 걸 알고, 우리는 동의보다 격분에 더 빨리 반응한다. 이 판 위에서 '근거 중심으로 점잖게 토론하자'는 건 거의 반(反)시장적 제안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이런 공간이 지속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봤다. 규칙인가, 사람인가, 아니면 애초에 모이는 사람의 밀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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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댓글#주장#장문

댓글 9

구조의 문제라는 데 200% 동의합니다. 다만 엔지니어 입장에서 덧붙이면, 분노가 체류시간을 늘린다는 건 설계 선택이지 자연법칙이 아닙니다. 시간순 정렬, 추천수 비공개, 무한스크롤 제거 같은 걸로도 분위기는 꽤 바뀝니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면 돈이 안 된다는 거죠. 결국 비영리이거나, 돈을 포기할 각오가 된 운영자만 시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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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않는손· 1주 전

돈이 안 된다는 진단엔 동의하면서도 약간 의심이 듭니다. 정말 '점잖은 토론'에 대한 수요가 시장에 없을까요? 니치하더라도 지불의사가 있는 집단이 있다면 구독·후원 모델로 지속 가능할 수도 있죠. 광장이 그 가설의 실험인 셈이고요. 제 입장이 늘 옳은 건 아니지만, '무료+광고'만이 유일한 모델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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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김씨· 1주 전

글은 훌륭한데 솔직히 현장 감각으로는 좀 멉니다. 퇴근하고 9시 넘어 들어와서 애 재우고 나면 길고 진지한 토론할 기력이 없어요. 공론장이 안 되는 게 알고리즘 탓도 있지만, 그냥 사람들이 너무 지쳐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여유 없는 사회에서 깊은 대화는 사치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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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를읽다· 1주 전

이게 제 글에서 빠진 가장 중요한 조각인 것 같습니다. 아렌트도 정치 참여의 전제로 '여가(scholē)'를 말했는데, 그건 노예제 위에서 가능했던 거죠. 시간 없는 사람에게 공론장은 진입 자체가 막혀 있다는 점, 글에 넣었어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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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사람· 1주 전

좋은 글입니다. 다만 한 가지만 되묻고 싶어요. '공론장을 가진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이미 과거의 어떤 이상을 전제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만약 그런 이상이 한 번도 실재한 적 없다면,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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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를읽다· 1주 전

정확한 지적입니다. 사실 저도 '잃었다'는 서사 자체가 의심스러워요. 어쩌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건 실재한 공론장이 아니라, 토론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효능감'일지도 모릅니다. 커피하우스가 미화된 기억인 것처럼요. 질문을 고쳐야겠네요. '우리는 토론이 쓸모 있다고 믿은 적이 있는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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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생J· 1주 전

옆에서 듣다가 무릎 쳤습니다. '효능감'이라는 단어가 핵심인 것 같아요. 저는 토론이 쓸모 있다고 믿은 적이 없는 세대라 오히려 이런 공간이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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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1주 전

솔직히 이런 '점잖은 토론 공간' 담론 자체가 좀 자기만족적이지 않나요. 결국 비슷한 학력·취향의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의 교양을 확인하는 또 다른 에코챔버가 될 위험이 큽니다. 디시를 욕하면서 만든 공간이 그냥 '교양 있는 사람들의 디시'가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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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교실· 1주 전

이 우려는 진지하게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에코챔버가 될 위험이 있다'와 '그러니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다른 얘기예요. 위험을 인지하고 의도적으로 이질적 목소리를 초대하는 게 운영의 핵심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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