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말의 무게 — 진료실에서 매일 겪는 일
외래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이거 과학적으로 증명된 거 맞죠?"다. 환자분들 마음은 이해한다. 불안하니까 확실한 닻을 원하는 거다. 그런데 의학에서 '증명'이라는 단어는 환자가 기대하는 만큼 단단하지 않다. 우리가 쓰는 건 증명이 아니라 증거의 무게다. 같은 약이라도 무작위대조시험(RCT) 메타분석에서 나온 결론과, 환자 50명 관찰연구에서 나온 결론은 신뢰의 급이 다르다. p값이 0.04라고 진실이 켜지는 게 아니라, 효과크기·신뢰구간·연구 설계·이해상충까지 다 봐야 한다. "통계적으로 유의"와 "임상적으로 의미 있음"은 전혀 다른 말인데, 기사 제목에선 늘 뭉개진다. 특히 무서운 건 '증명'이라는 단어가 회의를 차단한다는 점이다. 환자가 "증명됐다며 왜 안 들어요" 하면, 그 약이 그 환자 아형에는 안 맞을 수 있다는 미묘한 이야기를 꺼낼 자리가 사라진다. 과학은 원래 잠정적이고 수정 가능한 건데, '증명'은 그걸 닫아버린다. 그래서 나는 요즘 환자한테 "증명됐다"는 말 대신 "지금까지 쌓인 증거로는 이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입니다"라고 말한다. 길고 덜 시원하다. 근데 이게 더 정직하다고 믿는다. 다른 분야 분들은 '증명'이라는 단어, 어떻게 다루시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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