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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처럼 번지는 생각의 광장

Wavora는 댓글 한 줄이 물결처럼 번져 오프라인 무대까지 이어지는, 깊이 있는 담론의 장입니다.

오늘의 Wavora

지금 가장 활발히 오가는 생각들

경제·월급쟁이김씨·2개월 전

9년차인데 첫 직장보다 통장이 더 가볍습니다 — 실질임금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배운 후기

2016년에 신입으로 받던 실수령이 230쯤이었다. 지금 9년차, 명목으로는 380 받는다. 숫자만 보면 1.6배다. 그런데 왜 통장은 더 가벼운가. 작년에 진지하게 가계부를 엑셀로 다시 짜봤다. 그러다 '실질임금'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했다. 2016년 서울 원룸 보증금 1000에 월 45였다. 지금 비슷한 동네는 보증금 2000에 월 70~80이다. 점심값은 6500원에서 만원이 기본선이 됐고, 회식 안 해도 그렇다.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로 환산해보니 내 380은 2016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대략 300 초반밖에 안 된다. 명목 1.6배 올랐는데 구매력은 1.3배 남짓. 그 사이 나는 야근을 더 했고 책임은 비교도 안 되게 무거워졌다. 무서운 건 이게 '나만 못 벌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은행이나 통계청 자료 보면 실질임금 증가율이 몇 년째 거의 멈춰 있거나 마이너스인 해도 있었다. 우리는 다들 명목 숫자가 오르는 걸 보면서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고 자기최면을 거는데, 물가가 그 숫자를 조용히 갉아먹는다. 연봉협상 때 5% 올랐다고 좋아했던 게 물가 3.6% 시절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을 때의 허탈함. 질문은 이거다. 우리는 왜 명목임금의 숫자에 그렇게 쉽게 안심하는가. 그리고 회사와 협상할 때 '물가만큼은 보장'이라는 게 왜 당연한 출발선이 아니라 매번 싸워야 얻는 양보처럼 느껴지는가. 비슷하게 느끼는 분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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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댓글경험주장
문화·예술·퇴고중·2개월 전

"잘 쓰고 싶다"는 틀린 질문이었다 — 9년 쓰고 나서 안 것

브런치에 글 쓴 지 9년 됐다. 그동안 머릿속에 박힌 질문은 늘 '어떻게 하면 잘 쓸까'였다. 문장을 다듬고, 좋은 작가들 필사하고, 비유를 모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글이 다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는 걸 깨달았다. 잘 쓰려고 할수록 글이 '잘 쓴 글처럼' 보이려고만 했다. 전환점은 엄마 이야기를 쓸 때였다. 잘 쓸 수가 없었다. 너무 가까워서, 멋진 문장이 다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기억나는 대로, 엄마가 김치 담글 때 손에 묻은 고춧가루를 앞치마에 닎던 그 동작만 썼다. 비유도 없고 리듬도 안 맞았다. 그런데 그 글이 9년 중 가장 많이 읽혔고,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엄마 얘기를 댓글로 달았다. 그때 알았다. '잘 쓰고 싶다'는 결국 '잘 쓴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였다는 걸. 질문이 나를 향해 있었던 거다. 제대로 된 질문은 '무엇을 정확하게 말하고 싶은가'였다. 정확하게 쓰면 가끔 못나 보이고, 그런데 그게 읽힌다. 글쓰기 시작하는 분들에게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정확하게 쓰려고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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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댓글경험주장
과학·기술·회진끝나고·2개월 전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말의 무게 — 진료실에서 매일 겪는 일

외래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이거 과학적으로 증명된 거 맞죠?"다. 환자분들 마음은 이해한다. 불안하니까 확실한 닻을 원하는 거다. 그런데 의학에서 '증명'이라는 단어는 환자가 기대하는 만큼 단단하지 않다. 우리가 쓰는 건 증명이 아니라 증거의 무게다. 같은 약이라도 무작위대조시험(RCT) 메타분석에서 나온 결론과, 환자 50명 관찰연구에서 나온 결론은 신뢰의 급이 다르다. p값이 0.04라고 진실이 켜지는 게 아니라, 효과크기·신뢰구간·연구 설계·이해상충까지 다 봐야 한다. "통계적으로 유의"와 "임상적으로 의미 있음"은 전혀 다른 말인데, 기사 제목에선 늘 뭉개진다. 특히 무서운 건 '증명'이라는 단어가 회의를 차단한다는 점이다. 환자가 "증명됐다며 왜 안 들어요" 하면, 그 약이 그 환자 아형에는 안 맞을 수 있다는 미묘한 이야기를 꺼낼 자리가 사라진다. 과학은 원래 잠정적이고 수정 가능한 건데, '증명'은 그걸 닫아버린다. 그래서 나는 요즘 환자한테 "증명됐다"는 말 대신 "지금까지 쌓인 증거로는 이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입니다"라고 말한다. 길고 덜 시원하다. 근데 이게 더 정직하다고 믿는다. 다른 분야 분들은 '증명'이라는 단어, 어떻게 다루시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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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경험정보
윤리·가치·회진끝나고·2개월 전

아버지 연명의료 동의서에 서명하지 못한 11일을 적어봅니다

직업이 의사인데도 막상 보호자석에 앉으니 아무것도 모르겠더군요. 작년 겨울,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셨고 의료진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없으니 가족 합의로 결정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매일 다른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은 환자를 더 고통스럽게 한다"고 설명하던 사람인데, 제 아버지 앞에서는 11일을 끌었습니다. 동의서에 서명하는 게 아버지를 포기하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머리로는 인공호흡기를 떼는 게 자연스러운 죽음을 돌려드리는 거라는 걸 알았지만, 손이 안 움직였습니다. 동생은 "형은 의사니까 결정해"라고 했고, 저는 그 말이 책임을 떠넘기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화가 났습니다. 누구도 "내가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문장을 평생 안고 가고 싶지 않았던 거죠. 결국 서명은 했고, 아버지는 사흘 뒤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제가 묻고 싶은 건 이겁니다. 우리는 왜 "치료를 중단하는 결정"은 능동적 행위로 느끼면서,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결정"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느낄까요. 둘 다 똑같이 누군가 선택한 행위인데. 이 비대칭이 가족들을 11일씩 붙잡아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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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휴학생J·2개월 전

점심 메뉴 하나 못 고르는 내가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오늘 회사 근처에서 30분을 서성였다. 김치찌개냐 돈가스냐. 결국 어제 먹은 게 김치찌개라서 돈가스를 골랐는데, 집에 오는 길에 문득 이상했다.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어제 먹은 메뉴'가 나 대신 고른 거 아닌가. 자유의지 얘기 나오면 보통 거창하게 운명이니 결정론이니 하는데, 나는 그냥 이 점심 메뉴 수준에서 막힌다. 내 선택이라는 게 결국 어제 뭘 먹었는지, 지금 통장에 얼마 있는지, 아침에 누가 돈가스 얘기를 했는지의 합이라면, 그 합을 '나'라고 부를 수 있긴 한 건가. 합산기는 자유롭지 않잖아. 그렇다고 '다 정해져 있다'고 하기엔 또 억울하다. 분명 망설였고, 망설이는 그 느낌은 진짜였다. 이 망설임의 정체가 뭔지 누가 좀 정리해줬으면 좋겠다. 자유의지 입문하기 좋은 책이나 관점도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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