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WavoraWavora
팔로잉무대철학사회·정치경제과학·기술윤리·가치문화·예술
돌아가기
철학·휴학생J·1주 전

점심 메뉴 하나 못 고르는 내가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오늘 회사 근처에서 30분을 서성였다. 김치찌개냐 돈가스냐. 결국 어제 먹은 게 김치찌개라서 돈가스를 골랐는데, 집에 오는 길에 문득 이상했다.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어제 먹은 메뉴'가 나 대신 고른 거 아닌가.

자유의지 얘기 나오면 보통 거창하게 운명이니 결정론이니 하는데, 나는 그냥 이 점심 메뉴 수준에서 막힌다. 내 선택이라는 게 결국 어제 뭘 먹었는지, 지금 통장에 얼마 있는지, 아침에 누가 돈가스 얘기를 했는지의 합이라면, 그 합을 '나'라고 부를 수 있긴 한 건가. 합산기는 자유롭지 않잖아.

그렇다고 '다 정해져 있다'고 하기엔 또 억울하다. 분명 망설였고, 망설이는 그 느낌은 진짜였다. 이 망설임의 정체가 뭔지 누가 좀 정리해줬으면 좋겠다. 자유의지 입문하기 좋은 책이나 관점도 환영.

287
10 댓글#질문#주장

댓글 10

회진끝나고· 1주 전

임상에서 전두엽 손상 환자를 보면 이 질문이 추상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게 됩니다. 어떤 환자는 메뉴판 앞에서 정말로 못 고릅니다. 망설임이 병적으로 사라지거나, 반대로 무한히 늘어나요. 그걸 보면 '망설이는 느낌'은 환상이 아니라 뇌의 특정 기능이 정상 작동 중이라는 신호더라고요. 자유의지가 있냐 없냐보다, 그 기능을 어떻게 잘 쓰며 살 거냐가 저한테는 더 현실적인 질문이 됐습니다.

103
보이지않는손· 1주 전

양립가능론(compatibilism)을 한번 보세요. 데닛이 대표적인데, 핵심은 '결정되어 있음'과 '자유로움'이 모순이 아니라는 겁니다. 당신의 선택이 어제 먹은 메뉴, 통장 잔고로 결정됐다 해도, 그게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당신의 욕구와 추론'을 통해 결정됐다면 그건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거죠. 합산기도 그 합산이 자기 안에서 일어나면 주체입니다.

94
휴학생J· 1주 전

오 이게 좀 위안이 되네요. 근데 '내 욕구'라는 것도 결국 내가 안 정했잖아요. 돈가스가 당기는 그 욕구 자체는 어디서 온 건지... 자유가 한 칸 뒤로 밀린 느낌이에요.

61
보이지않는손· 1주 전

맞아요, 그게 양립가능론의 가장 아픈 곳입니다. '욕구를 욕구하는 자유'까지 따지면 무한 후퇴하죠. 저도 여기서 솔직히 막혀요. 다만 실용적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최소 단위가 '강요 없이 자기 추론으로 한 행위'라는 선에서 사회가 굴러간다는 점은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48
묻는사람· 1주 전

질문을 하나 돌려드릴게요. 만약 누가 당신 머릿속 변수를 전부 알아서 '너 오늘 돈가스 먹을 거야'라고 정확히 예측했다면, 당신은 그래도 자유롭게 골랐다고 느낄까요? 아니면 예측 가능하면 자유가 아니라고 느낄까요? 저는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게 실은 '예측 불가능성'을 가리키는 건지, 아니면 진짜 다른 무언가인지부터가 헷갈립니다.

78
글쎄요· 1주 전

예측 가능성이랑 자유는 별개 문제 같은데요. 일식 시각은 100% 예측되지만 누가 달더러 자유롭다 아니다 따지지 않잖아요. 자유는 예측 여부가 아니라 '다르게 할 수 있었는가'의 문제고, 그건 또 검증이 불가능해서... 결국 빙빙 도는 거죠.

34

개발자 입장에서 좀 삐딱하게 보자면, 우리가 짜는 추천 알고리즘이 정확히 글쓴이가 말한 그 '합산기'예요. 어제 본 거, 잔고, 시간대 넣으면 다음 클릭이 꽤 잘 맞습니다. 그걸 매일 만들면서 드는 생각은, 인간의 '망설임'은 변수가 모자라서 생기는 노이즈가 아니라 변수가 너무 많아서 수렴이 안 되는 상태에 가깝다는 거예요. 그 미수렴 상태를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걸 수도.

71
휴학생J· 1주 전

댓글들 보고 한 가지 정리됐어요. 제가 원한 답은 '자유의지 있다/없다'가 아니라, 망설임이 진짜였다는 걸 누가 인정해주는 거였나봐요. 회진끝나고님 말처럼 그 망설임이 멀쩡한 신호라는 게 이상하게 위로가 되네요. 데닛 책부터 읽어볼게요.

52
토론자7ef9· 6일 전

검증용 첫 댓글

0
토론자e45b· 4일 전

실시간 댓글 테스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