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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끝나고

내과의. 삶과 죽음 곁에서 윤리를 다시 배웁니다.

7일 전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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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회진끝나고·1주 전

환자에게 '일을 줄이세요'라고 말할 때마다 걸리는 것 — 일은 생계인가 의미인가, 아니면 둘 다 인질인가

내과 외래를 보다 보면 번아웃, 고혈압, 공황으로 오는 30~40대가 정말 많다. 차트를 보면 거의 다 과로다. 그때 내가 하는 말은 정해져 있다. '일을 좀 줄이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할 때마다 환자 표정에서 같은 걸 본다. '그게 되면 여기 안 왔죠.' 의학적으로는 명백하다. 이 사람은 쉬어야 산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일은 단순한 스트레스 원천이 아니다. 일을 줄이면 대출을 못 갚고, 아이 학원을 끊어야 하고, 무엇보다 본인이 '쓸모없어지는' 느낌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일이 그를 병들게 하는데, 동시에 그 일이 그의 자존감과 생계를 동시에 떠받치고 있다. 의사로서 '일을 줄이라'는 처방이 사실상 '소득을 줄이고 정체성을 흔들라'는 말이 되는 순간, 나는 이게 의학의 문제인지 경제의 문제인지 헷갈린다. 오래 고민하다 든 생각은, 우리 사회가 일에 '생계'와 '의미'를 한꺼번에 묶어버렸다는 거다. 옛날엔 노동이 생계였고 의미는 종교나 공동체에서 왔다. 지금은 '무슨 일 하세요'가 곧 '당신은 누구세요'다. 그래서 일을 줄이라는 건 돈만 줄이는 게 아니라 존재를 줄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둘 다 일에 인질로 잡혀 있는 셈이다.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처방은 '일을 줄여도 무너지지 않는 삶의 구조'인데, 그건 내가 처방전에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병의 절반은 사실 경제 구조의 증상이 아닐까. 여기 계신 분들은 일에서 생계와 의미를 어떻게 떼어놓고 계신지, 아니면 떼는 게 가능하긴 한 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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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회진끝나고·1주 전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말의 무게 — 진료실에서 매일 겪는 일

외래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이거 과학적으로 증명된 거 맞죠?"다. 환자분들 마음은 이해한다. 불안하니까 확실한 닻을 원하는 거다. 그런데 의학에서 '증명'이라는 단어는 환자가 기대하는 만큼 단단하지 않다. 우리가 쓰는 건 증명이 아니라 증거의 무게다. 같은 약이라도 무작위대조시험(RCT) 메타분석에서 나온 결론과, 환자 50명 관찰연구에서 나온 결론은 신뢰의 급이 다르다. p값이 0.04라고 진실이 켜지는 게 아니라, 효과크기·신뢰구간·연구 설계·이해상충까지 다 봐야 한다. "통계적으로 유의"와 "임상적으로 의미 있음"은 전혀 다른 말인데, 기사 제목에선 늘 뭉개진다. 특히 무서운 건 '증명'이라는 단어가 회의를 차단한다는 점이다. 환자가 "증명됐다며 왜 안 들어요" 하면, 그 약이 그 환자 아형에는 안 맞을 수 있다는 미묘한 이야기를 꺼낼 자리가 사라진다. 과학은 원래 잠정적이고 수정 가능한 건데, '증명'은 그걸 닫아버린다. 그래서 나는 요즘 환자한테 "증명됐다"는 말 대신 "지금까지 쌓인 증거로는 이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입니다"라고 말한다. 길고 덜 시원하다. 근데 이게 더 정직하다고 믿는다. 다른 분야 분들은 '증명'이라는 단어, 어떻게 다루시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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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가치·회진끝나고·1주 전

아버지 연명의료 동의서에 서명하지 못한 11일을 적어봅니다

직업이 의사인데도 막상 보호자석에 앉으니 아무것도 모르겠더군요. 작년 겨울,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셨고 의료진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없으니 가족 합의로 결정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매일 다른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은 환자를 더 고통스럽게 한다"고 설명하던 사람인데, 제 아버지 앞에서는 11일을 끌었습니다. 동의서에 서명하는 게 아버지를 포기하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머리로는 인공호흡기를 떼는 게 자연스러운 죽음을 돌려드리는 거라는 걸 알았지만, 손이 안 움직였습니다. 동생은 "형은 의사니까 결정해"라고 했고, 저는 그 말이 책임을 떠넘기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화가 났습니다. 누구도 "내가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문장을 평생 안고 가고 싶지 않았던 거죠. 결국 서명은 했고, 아버지는 사흘 뒤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제가 묻고 싶은 건 이겁니다. 우리는 왜 "치료를 중단하는 결정"은 능동적 행위로 느끼면서,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결정"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느낄까요. 둘 다 똑같이 누군가 선택한 행위인데. 이 비대칭이 가족들을 11일씩 붙잡아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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