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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회진끝나고·1주 전

환자에게 '일을 줄이세요'라고 말할 때마다 걸리는 것 — 일은 생계인가 의미인가, 아니면 둘 다 인질인가

내과 외래를 보다 보면 번아웃, 고혈압, 공황으로 오는 30~40대가 정말 많다. 차트를 보면 거의 다 과로다. 그때 내가 하는 말은 정해져 있다. '일을 좀 줄이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할 때마다 환자 표정에서 같은 걸 본다. '그게 되면 여기 안 왔죠.'

의학적으로는 명백하다. 이 사람은 쉬어야 산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일은 단순한 스트레스 원천이 아니다. 일을 줄이면 대출을 못 갚고, 아이 학원을 끊어야 하고, 무엇보다 본인이 '쓸모없어지는' 느낌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일이 그를 병들게 하는데, 동시에 그 일이 그의 자존감과 생계를 동시에 떠받치고 있다. 의사로서 '일을 줄이라'는 처방이 사실상 '소득을 줄이고 정체성을 흔들라'는 말이 되는 순간, 나는 이게 의학의 문제인지 경제의 문제인지 헷갈린다.

오래 고민하다 든 생각은, 우리 사회가 일에 '생계'와 '의미'를 한꺼번에 묶어버렸다는 거다. 옛날엔 노동이 생계였고 의미는 종교나 공동체에서 왔다. 지금은 '무슨 일 하세요'가 곧 '당신은 누구세요'다. 그래서 일을 줄이라는 건 돈만 줄이는 게 아니라 존재를 줄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둘 다 일에 인질로 잡혀 있는 셈이다.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처방은 '일을 줄여도 무너지지 않는 삶의 구조'인데, 그건 내가 처방전에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병의 절반은 사실 경제 구조의 증상이 아닐까. 여기 계신 분들은 일에서 생계와 의미를 어떻게 떼어놓고 계신지, 아니면 떼는 게 가능하긴 한 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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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댓글#경험#논쟁

댓글 11

한나를읽다· 1주 전

아렌트가 정확히 이 구분을 했어요. 그는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를 나눴는데, 노동은 생존을 위해 끝없이 반복되는 것, 작업은 세상에 남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행위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죠. 현대의 비극은 이 셋을 전부 '직장'이라는 하나의 통에 욱여넣은 거예요. 그래서 직장을 잃으면 생존만이 아니라 세상에 흔적을 남길 통로와 사람들 앞에 설 무대까지 동시에 잃습니다. 선생님 환자가 무서워하는 게 바로 그 삼중 상실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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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끝나고· 1주 전

아렌트의 그 삼분법, 어렴풋이 알았는데 이렇게 진료실 장면에 대보니 소름이 돋네요. 삼중 상실. 제가 '일을 줄이라' 한마디로 그 셋을 한꺼번에 건드린 거였군요. 그래서 환자들이 그렇게 방어적이었던 거고. 다음 외래 때 말을 좀 더 신중히 골라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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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를읽다· 1주 전

한 가지만요. 그래서 '행위'(타인 앞에 서는 것)는 꼭 직장이 아니어도 됩니다. 아렌트가 강조한 공론장, 즉 이런 광장 같은 데서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것도 행위예요. 직장 밖에 작은 무대를 여러 개 가진 사람이 번아웃에서 덜 무너지는 걸 보면, 처방에 '직장 밖 무대를 만드세요'를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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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김씨· 1주 전

9년차 직장인으로서 '일을 줄이면 쓸모없어지는 느낌'이라는 대목에서 멈췄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래요. 야근이 몸을 망치는 거 아는데, 일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해서 일을 찾아요. 회사가 그렇게 길들인 건지 제 문제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생계는 둘째치고 '쉬는 법'을 아예 잃어버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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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소리· 1주 전

안식일이라는 개념이 그래서 무서울 만큼 지혜로워요. 유대 전통의 안식일은 '일을 쉬어라'가 아니라 '네가 일을 멈춰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매주 확인하라'는 훈련이었습니다. 인간이 자기를 생산성으로만 측정하지 않게 막는 장치였던 거죠. 쉬는 법을 잃었다는 건 어쩌면 '멈춰도 괜찮다'는 믿음을 잃은 것일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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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크레딧까지· 1주 전

이 글 읽으니 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아니라 의외로 '패터슨'(짐 자무시)이 떠오르네요. 버스기사로 일하며 몰래 시를 쓰는 주인공. 생계(운전)와 의미(시)를 완전히 분리해서 사는 사람의 고요함이 거기 있어요. 일에서 의미를 안 찾고 일 밖에서 찾는 삶. 모두가 그럴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일=정체성' 공식이 유일한 답은 아니라는 걸 그 영화가 조용히 보여줍니다.

48
퇴고중· 1주 전

패터슨 언급 반갑네요. 그 영화의 핵심이 '아무도 안 알아줘도 쓴다'는 거잖아요. 의미를 시장(인정·돈)에서 떼어내 본인 안에 둔 사람. 어쩌면 번아웃의 해독제는 일을 줄이는 게 아니라,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의미를 일 밖에 하나 갖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44
보이지않는손· 1주 전

의미 있는 글인데, 한쪽으로만 흐를까봐 균형추 하나 답니다. 일이 생계와 의미를 동시에 준다는 건 비극만은 아니에요.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노동은 그냥 고통스러운 생존이었고, 그 안에서 의미와 정체성까지 찾을 수 있게 된 건 오히려 현대 노동시장이 준 사치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일이 의미를 준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의미를 '단 하나의' 일에 다 걸도록 강요하는 구조겠죠. 일 자체를 악역으로 모는 건 좀 과하다고 봐요.

31
회진끝나고· 1주 전

균형추 감사합니다. 동의해요. 저도 일을 악으로 모는 게 아니라, 일이 '전부'가 됐을 때의 위험을 말하고 싶었어요. 의미를 주는 일은 축복이죠. 다만 그 축복이 유일한 버팀목일 때, 그게 무너지면 사람도 같이 무너지더라고요. 진료실에서 본 건 일이 나쁜 게 아니라 의지할 데가 그것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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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1주 전

'현대 노동이 의미까지 줘서 사치'라는 건 좀 미화 아닌가요. 플랫폼 배달, 콜센터, 단순 반복직에 종사하는 사람한테 일이 의미와 정체성을 준다고 말하긴 어렵죠. 의미를 주는 일은 일부 화이트칼라의 경험이고, 다수에겐 일은 여전히 그냥 생존입니다. 이 글의 '의미 vs 생계' 프레임 자체가 사실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의 고민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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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끝나고· 1주 전

뼈아픈 지적입니다. 맞아요, 제 진료실에 오는 분들도 사실 '일을 줄일 선택지라도 있는' 비교적 안정된 분들이 많죠. 정말 위태로운 분들은 아파도 외래에 올 시간조차 없습니다. 제 글이 '의미를 고민할 여유가 있는 사람'의 시야에 갇혀 있었다는 거, 인정하고 새겨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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