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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엔딩크레딧까지·1주 전

브레송이 문을 닫고 발소리만 들려줄 때,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나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를 다시 봤다. 손이 지갑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을 그는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손목, 옷자락, 사람들 틈, 그리고 빠져나온 손. 정작 '훔치는 행위' 자체는 프레임 바깥에 있거나 너무 빨라서 눈이 따라가지 못한다. 처음 봤을 때는 답답했다. 보여줄 걸 안 보여준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다르게 다가왔다.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는 관객을 공범으로 만든다. 빈칸을 내가 채워야 하니까. 행위를 직접 보면 나는 구경꾼이지만, 행위가 생략되면 나는 그 손이 무엇을 했는지 상상하느라 그 손과 한편이 된다. 히치콕이 폭탄을 보여주고 서스펜스를 만든다면, 브레송은 아예 안 보여주고 내 머릿속에서 사건이 일어나게 한다.

요즘 영화들은 반대다. 4K로 모든 모공을 보여주고, 슬로모션으로 모든 타격을 분해한다. 다 보여주는데 왜 덜 남을까. 보여주지 않음이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관객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다 떠먹여 주는 영화는 관객을 못 믿는 영화 아닐까. 여러분이 '안 보여줘서 더 무서웠던/슬펐던' 장면이 있다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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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주장#논쟁

댓글 8

큐레이터L· 1주 전

전시 기획할 때도 똑같은 고민을 합니다. 작품을 다 설명하는 캡션을 붙이면 관람객은 그 문장을 확인하고 지나가요. 캡션을 줄이면 멈춰 서서 봅니다. 정보를 빼는 게 시간을 버는 일이더라고요. 다만 '안 보여줌'이 게으름의 알리바이로 쓰이는 경우도 많아서, 그 경계가 늘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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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크레딧까지· 1주 전

그 경계 말씀이 핵심인 것 같아요. 브레송은 안 보여주는 대신 소리를 극도로 정밀하게 설계하죠. 발소리, 동전 소리, 옷 스치는 소리. 비운 자리에 다른 감각을 채워넣는 노동이 있어요. 그냥 비우기만 하면 그건 미학이 아니라 회피겠죠.

61
큐레이터L· 1주 전

맞아요. '여백'과 '공백'은 다르죠. 여백은 설계된 비움이고 공백은 그냥 빈 거고. 관객은 그 둘을 귀신같이 구분합니다.

48
회진끝나고· 1주 전

의외의 분야 얘기 하나. 환자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할 때도 비슷해요. 다 말하지 않고 침묵을 두면 환자가 스스로 묻습니다. '그럼 얼마나 남은 건가요.' 제가 다 말해버리면 환자는 받아들일 시간을 못 가져요. 정보를 늦추는 게 잔인한 게 아니라 배려일 때가 있더라고요. 영화의 생략도 그런 배려일 수 있겠다 싶네요.

88
퇴고중· 1주 전

소설에서도 같은 문제예요. '그녀는 슬펐다'고 쓰면 독자는 안 슬프고, 그녀가 식은 밥을 혼자 데우는 장면을 쓰면 독자가 슬퍼요. 보여주지 말고 보여주라(show, don't tell). 영화의 '안 보여줌'은 사실 더 고급 단계인 것 같아요. 보여주는 것조차 줄이는 거니까.

71
글쎄요· 1주 전

글쎄요. 좀 낭만화하는 것 같습니다. 브레송이 위대한 건 인정하는데, '안 보여주면 관객이 채운다'는 논리는 너무 편리해요. 관객이 채울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죠? 대부분은 그냥 '뭐야 안 보여주네' 하고 넘어갑니다. 보여주지 않음이 작동하려면 관객이 이미 충분히 훈련돼 있어야 하는데, 그럼 그건 소수를 위한 미학 아닌가요.

-3
엔딩크레딧까지· 1주 전

반론 감사합니다. 다만 '소수만 알아본다'는 게 약점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모든 관객이 같은 깊이로 볼 필요는 없죠. 처음엔 답답해하다가 두 번째에 보이는 것도 있고요. 제가 그랬으니까. 작품이 관객을 자라게 만들 수도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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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생J· 1주 전

저는 입문자라 솔직히 글쎄요님 말에 처음엔 공감했어요. 근데 '관객을 자라게 한다'는 표현 보고 생각이 바뀌네요. 처음 본 영화를 다 이해 못 한다고 그 영화가 실패한 건 아니니까요. 책도 그렇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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