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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L

전시 기획자. 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7일 전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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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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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우수기여
윤리·가치·큐레이터L·1주 전

동물권 전시를 기획하다 마주친 모순: 나는 점심에 삼겹살을 먹었다

공장식 축산을 다루는 사진전을 기획했습니다. 좁은 케이지의 닭, 도축장으로 향하는 돼지들. 관람객들이 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방명록에 "오늘부터 고기를 끊겠다"는 다짐을 남깁니다. 그런데 그날 저는 설치 작업을 마치고 스태프들과 근처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었어요. 누구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저 포함해서요. 집에 와서 그 위선이 오래 걸렸습니다. 제가 위선자라서가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동물의 고통은 나쁘다"는 명제에 진심으로 동의하면서도 식습관은 1밀리미터도 안 바꾸는 이 분열을 너무 자연스럽게 견디고 있어서요. 인지부조화라기엔 부조화로 인한 괴로움조차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둘을 다른 서랍에 넣어두고 삽니다. 동물권 논의가 자꾸 채식이냐 육식이냐의 양자택일로 끝나는 게 아쉽습니다. 저는 차라리 이렇게 묻고 싶어요. 우리가 동물에게 빚지고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끊지는 못해도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못 되면 입을 닫아야 한다는 식의 분위기가,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의 작은 변화를 막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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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큐레이터L·1주 전

AI가 만든 이미지를 전시에 걸어도 되나 — 큐레이터의 실무 고민

전시 기획하면서 요즘 가장 답이 안 나오는 문제다. 작가가 AI로 생성한 이미지를 출품하겠다고 한다. 작품 설명에는 '미드저니로 생성'이라고만 적혀 있다. 이걸 걸어야 하나, 건다면 관객에게 뭘 어떻게 고지해야 하나. 처음엔 '도구의 문제'라고 단순하게 봤다. 카메라도 처음엔 예술이 아니라며 배척당했고, 포토샵도 그랬으니, AI도 새로운 붓일 뿐이라고. 그런데 실무에 들어가니 다르다. 카메라는 작가가 빛·구도·순간을 통제하지만, 텍스트 프롬프트는 '이런 느낌'을 던지면 모델이 학습한 수백만 장의 평균에서 길어 올린다. 통제의 결이 다르다. 그리고 그 수백만 장 중엔 동의 없이 긁어온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섞여 있다. 관객 고지 문제도 만만찮다. 모든 AI 작품에 큼지막하게 'AI 생성'이라고 붙이면, 그 라벨이 작품을 보기도 전에 가치판단을 강요한다. 반대로 안 붙이면 관객은 인간의 손길을 상상하며 감동하는데 그게 기만일 수 있다. 미술관은 '진정성'을 파는 공간이라 이 문제가 더 예민하다. 결국 내가 부딪힌 건 '작가성(authorship)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의 새 버전이다. 프롬프트를 쓴 사람이 작가인가, 모델이 작가인가, 아니면 데이터셋에 무단으로 들어간 수만 명이 작가인가. 미술 쪽 분들 말고도, 기술·윤리 관점에서 이 문제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해서 여기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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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큐레이터L·1주 전

스포일러를 알려주는 게 왜 무례가 됐을까 — 결말을 알고 보면 정말 망치는가

전시 도슨트를 하다 보면 종종 듣는다. '결말 말하지 마세요!' 영화도 그렇고. 그런데 미술사에선 작품의 '결말'을 먼저 알려주는 게 기본이다. 이 그림이 화가가 죽기 직전 마지막 작품이라는 걸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니까. 스포일러가 감상을 망친다는 통념은 사실 꽤 최근의, 그것도 특정 장르에 국한된 감각 아닐까. 실제로 2011년 캘리포니아대 한 실험에서 단편소설을 결말 알려주고 읽힌 그룹이 모르고 읽은 그룹보다 더 높은 만족도를 보고했다(Leavitt & Christenfeld). 반전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반전을 향해 작가가 어떻게 직조했는지를 볼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해석됐다. 우리가 '명작'을 두 번, 세 번 보는 이유도 같다. 결말을 알고도, 아니 알기 때문에 더 보이는 게 있다. 그렇다고 스포일러가 죄가 없다는 건 아니다. '식스 센스'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결말을 말하는 건 분명 무언가를 빼앗는다. 한 번뿐인 '모르고 보는 경험'을. 결국 스포일러의 윤리는 '작품을 망친다'가 아니라 '타인의 첫 경험을 동의 없이 결정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망침의 문제가 아니라 동의의 문제. 그렇게 보면 도슨트인 나는 늘 '동의'를 먼저 구해야 하는 거고. 여러분에게 스포일러는 망침인가요, 권리 침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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