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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회진끝나고·1주 전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말의 무게 — 진료실에서 매일 겪는 일

외래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이거 과학적으로 증명된 거 맞죠?"다. 환자분들 마음은 이해한다. 불안하니까 확실한 닻을 원하는 거다. 그런데 의학에서 '증명'이라는 단어는 환자가 기대하는 만큼 단단하지 않다.

우리가 쓰는 건 증명이 아니라 증거의 무게다. 같은 약이라도 무작위대조시험(RCT) 메타분석에서 나온 결론과, 환자 50명 관찰연구에서 나온 결론은 신뢰의 급이 다르다. p값이 0.04라고 진실이 켜지는 게 아니라, 효과크기·신뢰구간·연구 설계·이해상충까지 다 봐야 한다. "통계적으로 유의"와 "임상적으로 의미 있음"은 전혀 다른 말인데, 기사 제목에선 늘 뭉개진다.

특히 무서운 건 '증명'이라는 단어가 회의를 차단한다는 점이다. 환자가 "증명됐다며 왜 안 들어요" 하면, 그 약이 그 환자 아형에는 안 맞을 수 있다는 미묘한 이야기를 꺼낼 자리가 사라진다. 과학은 원래 잠정적이고 수정 가능한 건데, '증명'은 그걸 닫아버린다.

그래서 나는 요즘 환자한테 "증명됐다"는 말 대신 "지금까지 쌓인 증거로는 이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입니다"라고 말한다. 길고 덜 시원하다. 근데 이게 더 정직하다고 믿는다. 다른 분야 분들은 '증명'이라는 단어, 어떻게 다루시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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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경험#정보

댓글 8

글쎄요· 1주 전

취지는 동의하는데, 이런 '겸손한 과학' 화법이 역으로 악용되는 것도 봤습니다. "과학도 확실한 게 아니라며?" 하면서 백신 거부나 음모론에 정당성을 주는 거죠. 증거의 무게에도 명백히 기우는 쪽이 있는데, 그 기울기를 흐리면 회의주의가 아니라 그냥 무지가 됩니다.

96
회진끝나고· 1주 전

이게 제 글에서 제일 약한 지점을 정확히 짚으셨어요. 그래서 저는 '잠정성'과 '비등함'을 구분합니다. 과학이 잠정적이라는 게 모든 주장이 동등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거든요. 흡연과 폐암 연관성처럼 증거가 압도적인 건 사실상 닫힌 질문이고요. 다음에 글 쓸 때 이 부분 더 명확히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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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1주 전

'잠정성과 비등함의 구분', 이 표현이 핵심이네요.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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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 개발에서도 '버그 없음을 증명했다'는 말은 거의 안 써요. 다익스트라가 "테스트는 버그의 존재를 보일 뿐 부재를 증명하지 못한다"고 한 게 딱 이거죠. 우리도 '커버리지 X%에서 회귀 없음' 정도로 말하지 '증명'은 형식검증 같은 특수한 경우 아니면 못 씁니다.

88
회진끝나고· 1주 전

다익스트라 인용 너무 좋네요. '부재의 증명'이 어렵다는 게 두 분야의 공통 통증인 듯합니다. 저장해뒀다가 인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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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교실· 1주 전

교실에서도 큰 문제예요. 교과서에 "과학자들이 증명했다"는 표현이 자꾸 나오는데, 그걸 외운 아이들은 과학을 '완성된 정답 모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정작 과학의 핵심인 '틀릴 수 있고 고쳐나간다'는 태도는 안 배우고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잠정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라고 풀어 말하는데, 시험 답안엔 그렇게 못 써서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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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생J· 1주 전

헉 저 고등학교 때 딱 그랬어요. '진화는 과학적 사실이자 이론이다'라는 문장이 무슨 말인지 시험 끝나고 한참 뒤에야 이해했어요. 사실/이론/가설 단어 구분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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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소리· 1주 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신학에서도 '확신'과 '맹신'을 구분하는 오랜 고민이 있어요. 의심을 허용하는 믿음이 더 단단하다는 역설이죠. 선생님의 '덜 시원하지만 더 정직한 화법'이 그 결과 닮아 있네요. 분야는 달라도 성숙한 태도는 비슷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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