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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한나를읽다·1주 전

"기술이 다 그렇게 만든다"는 말이 위험한 이유

요즘 술자리에서 제일 자주 듣는 체념의 문장이 있다. "어차피 기술이 그 방향으로 가니까 어쩔 수 없어." 알고리즘이 사람을 분열시키는 것도,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도, 다 기술의 필연이라는 거다. 나는 이 기술결정론이 편리한 알리바이라고 생각한다.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할 때 핵심은, 거대한 결과 앞에서 개인이 '나는 시스템의 톱니였을 뿐'이라며 사유와 판단을 멈추는 순간 책임이 증발한다는 거였다. 기술결정론은 같은 구조다. '기술이 그렇게 시켰다'고 말하는 순간, 그 기술을 어떤 지표로 설계할지 결정한 사람, 그걸 승인한 경영진, 규제를 미룬 정책결정자가 다 무대 뒤로 숨는다.

구체적으로 보자. 추천 알고리즘이 자극적 콘텐츠를 띄우는 건 '기술의 본성'이 아니라 '체류시간 최대화'라는 목표를 누군가 골랐기 때문이다. 다른 목표(예: 사용자 만족도, 다양성)를 넣으면 다르게 작동한다. 실제로 일부 플랫폼은 그렇게 조정도 한다. 즉 그건 필연이 아니라 선택이었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물론 반론이 있을 거다. 개인이 거대 기술 흐름을 거스를 힘이 정말 있느냐고. 자본의 경쟁 압력 속에서 '더 윤리적인 설계'를 택한 회사는 망하지 않느냐고. 나도 이 긴장을 안 풀린 채 들고 있다. 다만 '필연'이라는 단어로 그 긴장 자체를 지워버리는 건 사유를 그만두는 일이라고 본다. 여러분은 어디까지가 구조고 어디부터가 선택이라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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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댓글#주장#논쟁

댓글 9

설계하는 입장에서 100% 동의하면서도 절반은 항변하고 싶습니다. 추천 시스템이 자극적 콘텐츠를 띄우는 게 '누군가 악하게 골라서'라기보단, 체류시간이 측정하기 쉽고 매출과 직결돼서 '기본값'이 된 면이 큽니다. 만족도는 측정이 어렵고요. 즉 순수한 선택이라기보다 '측정 가능성'이라는 구조가 선택지를 좁힙니다. 그래도 선택이 있었다는 본질은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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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를읽다· 1주 전

'측정 가능성이 선택지를 좁힌다'는 보충이 제 글을 더 정확하게 만들어주네요. 구조가 선택을 0으로 만들진 않지만 비용을 다르게 매긴다는 거죠. 순수한 자유의지도 순수한 필연도 아닌, 그 사이의 책임을 어떻게 물을 거냐가 진짜 질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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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김씨· 1주 전

거창한 얘기 사이에 현장 얘기 하나. 저희 회사도 '시장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며 자동화 도입하고 인원 줄였는데, 막상 보면 그 '어쩔 수 없음'을 결정한 임원 성과급은 자동화로 비용 줄인 만큼 올랐더라고요. 필연이라는 말 뒤엔 항상 이득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글쓴이가 말한 '무대 뒤로 숨는 사람들'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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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않는손· 1주 전

솔직히 말하면 이건 좀 순진한 글입니다. '윤리적 설계를 택하면 된다'고 하는데, 경쟁 시장에서 체류시간을 포기한 회사는 광고 매출이 빠지고 인재가 떠나고 결국 그 자리를 덜 윤리적인 경쟁자가 채웁니다. 개별 도덕에 호소하는 걸로는 안 풀려요. 죄수의 딜레마라서 규제 같은 구조적 강제가 없으면 '선택'이라는 말은 공허합니다.

71
한나를읽다· 1주 전

순진하다는 지적 받아들입니다. 다만 제 글은 '개인 도덕으로 풀자'가 아니라 '필연이라는 서사가 규제 논의 자체를 봉쇄한다'는 거였어요. 죄수의 딜레마라는 진단에 동의하기 때문에 더더욱,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아니라 '구조를 누가 설계할 것인가'라는 정치적 질문으로 가야 한다는 거죠. 우리 둘은 사실 같은 방향을 보는 것 같은데요.

86
보이지않는손· 1주 전

그렇게 정리하니 동의합니다. '필연 서사가 규제 논의를 봉쇄한다'가 제가 놓친 지점이네요. 제가 너무 '개인 vs 구조' 이분법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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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1주 전

아렌트 끌어온 건 멋있는데 비유가 과한 것 같습니다. 알고리즘 설계자를 악의 평범성 맥락에 놓는 건, 홀로코스트 가담과 추천 알고리즘 튜닝을 같은 무게로 다루는 인상을 줘요. 책임 이야기는 맞지만 비유의 스케일이 논점을 흐립니다.

12
한나를읽다· 1주 전

스케일 지적은 타당합니다. 제가 빌려온 건 '결과의 무게'가 아니라 '사유를 멈추는 메커니즘'이었는데, 둘이 붙어 있는 개념이라 오해를 살 수 있겠네요. 다만 아렌트 본인도 평범성을 '규모'가 아니라 '무사유'로 정의했기 때문에, 작은 스케일에도 적용 가능한 도구라고 봅니다. 비유의 위험은 인정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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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소리· 1주 전

'무사유'에 방점이 있다는 정리에 동의합니다. 규모로 환원하면 오히려 아렌트를 오독하는 거죠. 작은 일상의 무사유가 더 무섭다는 게 그분 통찰의 핵심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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