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을 '안다'고 말할 때 우리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세월호, 이태원, 그리고 최근의 여러 참사 뉴스를 볼 때마다 '함께 아파한다'는 말이 자꾸 걸린다. 나는 정말 그들의 고통을 아는가, 아니면 안다고 느끼는 나 자신을 보고 있는가.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에서 한 말이 오래 남는다. 멀리서 고통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 연민의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는 것. SNS에 검은 리본 한 장 올리고 나면 마치 의무를 다한 듯 마음이 편해지는데, 그 편안함이야말로 위험한 신호 아닐까. 아렌트식으로 말하면, 고통받는 타인을 '추상적 인류'로 묶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구체적인 그 사람을 오히려 안 보게 된다.
그렇다고 '어차피 못 아니까 입 닫자'는 결론은 더 싫다. 그건 무관심을 지적 겸손으로 위장하는 거니까. 내가 도달한 잠정적 입장은, 안다고 착각하지 않으면서도 곁에 있기를 멈추지 않는 것. 근데 이게 말은 쉬운데 실제로 뭘 하라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비슷한 고민 해본 분들 의견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