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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정언명령·1주 전

선의의 거짓말은 없다 — 칸트 편을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서 인기 없을 주장인 거 압니다. 그래도 한번 진지하게 써봅니다. 거짓말은, 그게 아무리 선의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흔히 드는 반례가 있죠. 살인자가 문을 두드리며 '네 친구 어디 있냐'고 묻는다, 거짓말 안 하면 친구가 죽는다. 칸트는 여기서도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해서 욕을 먹습니다. 그런데 칸트의 진짜 논점은 결과가 아니라 이겁니다. 내가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허용하는 순간, 나는 '필요하면 거짓말해도 된다'는 규칙을 온 세상에 적용 가능한 법칙으로 세우는 거예요. 그 법칙이 보편화되면 '말'이라는 것 자체가 신뢰를 잃고, 거짓말이라는 행위 자체가 성립 불가능해집니다. 거짓말은 진실을 믿는 사람이 있어야만 작동하는 무임승차니까요.

현실에선 저도 흔들립니다. 시한부 환자에게, 상처받을 친구에게, 매번 진실을 말하진 못해요. 다만 저는 그 거짓말을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하지 않고 '나는 지금 잘못을 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게 정직이라고 봅니다. 거짓말을 선의로 포장하는 순간, 우리는 거짓말의 비용을 영원히 안 치르거든요. 반박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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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댓글#주장#논쟁

댓글 11

회진끝나고· 1주 전

의사로서 정면으로 반대합니다. 말기 환자에게 '얼마 안 남았다'를 어떻게 전하느냐는 거짓이냐 진실이냐의 이분법이 아니에요. 같은 사실도 언제, 어떤 순서로, 누구와 함께 듣게 하느냐가 환자의 남은 시간을 통째로 바꿉니다. 칸트식으로 '진실은 말했으니 내 의무는 다했다'고 하면, 그건 정직이 아니라 책임 회피일 때가 많습니다. 진실을 던지고 그 파편은 안 치우는 거죠.

121
정언명령· 1주 전

중요한 지적이라 받아들입니다. 다만 짚고 싶은 건, 선생님이 말씀하신 '언제 어떤 순서로'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을 전하는 방식의 문제잖아요. 그건 제 주장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제가 반대하는 건 '환자가 안 물어봤으니 차도가 있다고 말해두자' 같은 적극적 기만이에요. 침묵과 배려는 거짓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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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끝나고· 1주 전

그 구분은 동의합니다. 침묵과 적극적 기만은 다르죠. 그렇다면 우리 입장 차이가 생각보다 좁네요. 다만 현장에선 '희망을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 침묵과 기만 사이 회색지대에 너무 많아서, 저는 그 회색지대를 죄로 못 박는 게 오히려 환자를 버리는 일이 될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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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1주 전

보편화 논증 자체가 좀 트릭 같아요. '거짓말'을 보편화하면 무너지지만, '살인자에게 친구를 넘기지 않기 위한 거짓말'로 준칙을 좁히면 보편화해도 멀쩡하거든요. 결국 준칙을 얼마나 넓게/좁게 잡느냐에 따라 결론이 정반대로 나오는데, 그 범위를 정하는 객관적 기준은 칸트도 안 줬죠. 그래서 저는 정언명령이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답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인다고 봅니다.

109
정언명령· 1주 전

이게 제일 아픈 반박이고, 칸트 연구에서도 '준칙 설정 문제'로 계속 논쟁 중인 부분입니다. 솔직히 완벽한 답은 저도 없어요. 다만 준칙을 무한정 좁히면 '나, 오늘, 이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법칙'이 되는데 그건 법칙이라 부를 수 없죠. 보편화가 견딜 만큼의 일반성은 유지해야 한다는 선이 있긴 합니다. 그 선이 흐릿한 건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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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중· 1주 전

소설 쓰는 입장에서 보면, 모든 좋은 거짓말에는 비용 계산서가 따라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의 집사가 평생 한 자기기만의 비용을 마지막에 치르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글쓴이가 말 중 제일 와닿은 건 '거짓말을 선의로 포장하면 비용을 영원히 안 치른다'예요. 거짓말을 해도, 그게 빚이라는 건 잊지 말자는 정도로는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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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김씨· 1주 전

원칙은 멋있는데요, 9년 직장 다니면서 느낀 건 매일 아침 '잘 지내?'에 '죽겠다'고 솔직히 답하면 사회생활이 안 돼요. 우리가 하는 거짓말의 99%는 살인자 시나리오가 아니라 이런 윤활유 거짓말입니다. 이것까지 다 죄라고 하면 윤리가 너무 비싸서 아무도 못 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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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사람· 1주 전

근데 '잘 지내?'가 진짜 안부를 묻는 질문일까요? 그건 이미 양쪽 다 '인사치레'라는 규칙을 아는 의례 아닌가요. 둘 다 진실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거기엔 속는 사람이 없으니 칸트가 말한 거짓말 구조 자체가 성립 안 할 수도 있어요. 진짜 거짓말은 상대가 내 말을 진실로 믿을 때만 거짓말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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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김씨· 1주 전

오 이거 듣고 보니 맞네요. 그럼 제 윤활유 거짓말 대부분은 칸트도 봐주는 거였군요.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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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린이· 1주 전

입문자라 조심스러운데, 신뢰를 '무임승차'로 설명한 부분이 제 전공이랑 닿아서 신기했어요. 거짓말이 작동하려면 정직한 사람이 다수여야 한다는 게, 공공재에 무임승차하는 구조랑 똑같네요. 모두가 거짓말하면 화폐처럼 말의 가치가 0이 되는. 칸트가 이걸 200년 전에 직관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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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89be· 4일 전

@토론자2ce3 이거 어떻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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