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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가치·큐레이터L·1주 전

동물권 전시를 기획하다 마주친 모순: 나는 점심에 삼겹살을 먹었다

공장식 축산을 다루는 사진전을 기획했습니다. 좁은 케이지의 닭, 도축장으로 향하는 돼지들. 관람객들이 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방명록에 "오늘부터 고기를 끊겠다"는 다짐을 남깁니다. 그런데 그날 저는 설치 작업을 마치고 스태프들과 근처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었어요. 누구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저 포함해서요.

집에 와서 그 위선이 오래 걸렸습니다. 제가 위선자라서가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동물의 고통은 나쁘다"는 명제에 진심으로 동의하면서도 식습관은 1밀리미터도 안 바꾸는 이 분열을 너무 자연스럽게 견디고 있어서요. 인지부조화라기엔 부조화로 인한 괴로움조차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둘을 다른 서랍에 넣어두고 삽니다.

동물권 논의가 자꾸 채식이냐 육식이냐의 양자택일로 끝나는 게 아쉽습니다. 저는 차라리 이렇게 묻고 싶어요. 우리가 동물에게 빚지고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끊지는 못해도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못 되면 입을 닫아야 한다는 식의 분위기가,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의 작은 변화를 막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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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댓글#경험#논쟁

댓글 9

보이지않는손· 1주 전

경제학 관점 하나 보태면, 개인의 죄책감보다 가격이 훨씬 강력합니다. 동물복지 인증란이 일반란보다 비싸면 대부분 일반란을 사요. 도덕을 의지력에 맡기면 늘 집니다. 차라리 공장식 축산의 외부비용(항생제, 환경오염, 감염병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는 제도가 백만 명의 다짐보다 효과적입니다. 전시의 눈물은 사흘 가고 가격은 매일 작동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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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김씨· 1주 전

그 말이 맞긴 한데, 가격에 외부비용 반영하면 결국 서민 식탁부터 직격탄이에요. 동물복지란이 두 배 비싸면 못 사는 게 의지박약이 아니라 그냥 형편입니다. 윤리를 가격으로 풀면 윤리적으로 사는 게 돈 있는 사람의 특권이 돼버려요. 이 부분이 늘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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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않는손· 1주 전

그 지적이 제 논리의 가장 약한 고리입니다. 인정해요. 그래서 외부비용 내재화는 저소득층 환급 같은 보완 없이는 정의롭지 않죠. "윤리적 소비가 특권이 되는" 문제는 제가 가볍게 본 부분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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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끝나고· 1주 전

병원에서 채식 환자 식단 짜다 보면 느끼는 건데, 인간도 동물도 결국 "고통의 총량"으로 보면 시야가 넓어집니다. 완전 채식이 어려운 분께 저는 "고통이 큰 축산물부터 줄이자"고 권해요. 닭·돼지가 소보다 사육 밀도가 훨씬 잔혹하거든요. 큐레이터님 말씀처럼 양자택일을 깨면 실천 가능한 우선순위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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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명령· 1주 전

솔직한 글입니다. 다만 "완벽하지 못하니 작은 변화라도"라는 논리는 위험한 미끄럼틀이 될 수 있어요. 그 논리는 거의 모든 도덕적 타협을 정당화하거든요. "완벽하게 정직할 순 없으니 작은 거짓말은" 같은 식으로요. 작은 변화를 옹호하는 건 좋지만, 그게 부조화의 마취제가 되면 결국 아무것도 안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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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L· 1주 전

그 위험 인정합니다. 사실 제 글이 자기변명으로 읽힐 수 있다는 걸 알면서 올렸어요. 다만 "전부 아니면 무"의 기준이 실제로 더 나은 결과를 낳는지는 의문입니다. 주 1회 채식이라도 1년이면 수십 끼인데, 그 작은 변화를 "마취제"라고 깎아내리면 그나마 시작하려던 사람도 손을 떼더라고요. 마취가 되느냐 시작이 되느냐는 그 다음에 멈추느냐 나아가느냐로 갈린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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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1주 전

전시 자체에 대한 좀 불편한 질문 하나. 고통받는 동물 사진으로 관객 눈물을 끌어내는 것, 그것도 일종의 소비 아닌가요. 관객은 눈물 흘리며 자기가 좋은 사람임을 확인하고 삼겹살 먹으러 갑니다. 글쓴이처럼요. 전시가 변화를 만든다는 건 기획자의 자기위안일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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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L· 1주 전

아프지만 진지하게 받습니다. "고통의 스펙터클화"는 다큐멘터리 윤리에서 오래된 비판이고, 저도 늘 경계하는 지점이에요. 다만 "변화 없는 눈물"이라고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전시 후 동물복지 인증 제품 검색량이 지역에서 유의미하게 늘었다는 데이터가 있었거든요. 자기위안과 작은 행동 변화는 같은 사람 안에 공존합니다. 그걸 싸잡아 위선이라 부르면, 아무것도 안 본 사람과 보고 흔들린 사람을 똑같이 취급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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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를읽다· 1주 전

이 교환이 이 게시판이 지향하는 바 같네요. 글쎄요님의 질문이 거칠긴 해도, 그 덕에 큐레이터님이 "눈물의 윤리"를 데이터로 끌어내렸어요. 불편한 질문이 없었으면 안 나왔을 답입니다. 점수는 낮아도 값어치는 한 댓글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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