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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퇴고중·1주 전

번역은 반역인가 — 무라카미를 김춘미로 읽다가 양윤옥으로 다시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두 번역으로 읽었다. 옛날 김춘미 번역과 이후 양윤옥 번역. 같은 소설인데 화자의 인격이 달랐다. 한쪽 와타나베는 좀 더 건조하고 거리감 있었고, 다른 쪽은 더 다정하고 말끝이 부드러웠다. 어느 쪽이 '진짜' 하루키냐고 물으면 답을 못 하겠다.

이탈리아 속담에 'traduttore, traditore'(번역자는 반역자)라는 게 있다. 옮기는 순간 배신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이게 절반만 맞다고 생각한다. 번역가는 원문을 배신하지만, 동시에 원문이 자기 언어 안에서는 절대 도달 못 할 독자에게 가닿게 해준다. 배신 없이는 만남도 없다. 김연수가 어디선가 '번역은 그 작가를 한국어로 다시 쓰는 일'이라고 한 말이 오래 남았다.

특히 시는 더하다. 김소월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을 영어로 옮기면 'when you leave, sick of seeing me' 정도가 되는데, '역겨워'의 그 자기비하 섞인 한이 'sick of'로는 안 산다. 그렇다고 안 옮기면 김소월은 영원히 한국어 감옥에 갇힌다. 번역가는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살릴지 매 문장 결정한다. 그건 반역이라기보다 차라리 책임 같다. 여러분은 번역서 읽을 때 '번역가의 목소리'를 의식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투명한 유리창이길 바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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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댓글#논쟁#정보

댓글 9

개발자 시각에서 흥미로운 게, 기계번역은 정확히 반대 철학이에요. '번역가의 목소리'를 0으로 만드는 게 목표죠. 투명한 유리창. 근데 그래서 문학에선 처참하게 실패합니다. '역겨워'를 sick of로 처리하고 끝나니까요. 인간 번역가의 '배신'이 사실은 선택이고 해석이었다는 걸, 기계번역 결과물 보면 역설적으로 더 잘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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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마음· 1주 전

여기 한 가지 보태면, 최신 LLM 번역은 오히려 '목소리를 입히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하루키 문체로 번역해줘'가 되니까요. 근데 이게 더 무서운 지점이라고 봐요. 인간 번역가의 선택에는 책임의 주체가 있는데, 모델이 입힌 문체는 누구의 선택도 아니거든요. 글쓴이가 말한 '책임'이 사라진 배신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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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중· 1주 전

'책임의 주체가 없는 배신'... 정확한 표현이네요. 번역가의 오역은 욕이라도 먹을 수 있는데, 모델의 매끄러운 변형은 따질 대상이 없죠. 이거 따로 글로 쓰고 싶을 만큼 좋은 지적이에요.

59
광야의소리· 1주 전

성경 번역이야말로 이 논쟁의 끝판왕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의 '말씀'은 그리스어 로고스(logos)인데, 이건 말씀이자 이성이자 질서이자 원리예요. 한국어 '말씀' 하나로는 다 못 담죠. 개역한글과 새번역이 다르고, 그 차이로 교단이 갈리기도 합니다. 번역 한 단어가 신학을 바꿔요. 반역이라기엔 너무 무거운 책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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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린이· 1주 전

입문자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그럼 번역서 고를 때 번역가를 보고 골라야 하는 건가요? 저는 지금까지 출판사만 봤는데, 같은 책도 번역가 따라 이렇게 다르면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막막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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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중· 1주 전

좋은 방법 하나는, 서점에서 같은 책 두 판본의 첫 페이지를 나란히 읽어보는 거예요. 5분이면 어느 쪽 목소리가 내게 맞는지 느껴져요. 고전은 특히 번역가 이름 보고 고르는 분들 많아요. 막막하면 그 작가 번역으로 상 받은 사람부터 찾아보셔도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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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1주 전

투명한 유리창을 원한다는 쪽에 한 표. 저는 번역가의 개성이 강하게 느껴지면 오히려 불편해요. 원작자 글 읽으러 온 거지 번역가 글 읽으러 온 게 아니니까요. '책임 있는 배신'이라는 말, 멋있긴 한데 결국 번역가가 원작자보다 자기를 앞세우는 걸 미화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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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중· 1주 전

그 불편함 이해해요. 다만 '투명한 유리창'이 가능하다는 게 환상일 수 있어요. 유리창도 두께가 있고 색이 있죠. 번역가가 '안 보이려고' 선택한 무색투명함조차 하나의 스타일이에요. 차라리 보이는 개성이 정직할 수도 있고요. 물론 과하면 저도 거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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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1주 전

'무색투명함도 하나의 스타일'은 인정합니다. 완전 중립이 불가능하다는 거, 그건 맞아요. 그래도 저는 번역가가 그 불가능을 향해 애쓰는 쪽이 좋아요. 도달 못 해도 방향이 다르니까요. 좋은 논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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