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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묻는사람·1주 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처음엔 멋있었는데 자꾸 의심스럽다

데카르트 코기토 입문하면 다들 멋있다고 한다. 모든 걸 의심해도 의심하는 나는 의심할 수 없다, 그러니 나는 존재한다. 처음엔 무릎을 쳤는데 요즘은 자꾸 걸린다.

걸리는 지점은 이거다. '생각이 있다'까지는 인정하겠다. 그런데 거기서 어떻게 '생각하는 나'라는 실체로 점프하지? 비가 온다고 해서 '비 내리는 자'가 따로 있는 건 아니잖아. 생각이 일어난다는 사실에서 곧바로 그 생각의 '주인'을 끄집어내는 건, 문법이 시킨 착각일 수도 있다. 니체가 이걸 비슷하게 비꼰 걸로 안다. '생각한다'는 문장에 주어가 필요하니까 '나'를 만들어냈을 뿐이라고.

그래서 묻고 싶다. 코기토가 증명하는 건 '생각이 존재한다'까지인가, 아니면 정말 '나라는 실체가 존재한다'까지인가? 만약 전자뿐이라면 데카르트가 그 위에 쌓아올린 모든 게 흔들리는 거 아닌가. 철학 전공자분들 이거 어떻게 정리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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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댓글#질문#정보

댓글 9

정언명령· 1주 전

정확히 데카르트의 가장 약한 고리를 짚으셨어요. 칸트도 이걸 '오류추리(Paralogism)'라고 비판합니다. '생각한다'에 동반되는 '나는'이라는 의식은 경험의 형식적 조건일 뿐, 영혼이라는 실체의 존재 증명이 아니라는 거죠. 즉 '나'는 모든 생각에 따라붙는 통일점이긴 하지만, 그게 곧 불멸하는 실체라는 보장은 없다. 데카르트는 이 점프를 너무 빨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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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사람· 1주 전

'경험의 형식적 조건'과 '실체'를 구분하는 그 칼이 깔끔하네요. 그러니까 '나'는 존재하는 물건이 아니라 생각들이 묶이는 방식에 가깝다는 거군요. 근데 그러면 '묶는 자'는 또 누구냐는 질문이 다시 올라오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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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명령· 1주 전

바로 그 질문이 무한 후퇴를 막으려고 칸트가 '초월적 통각'이라는 개념을 박아둔 이유예요. 묶는 자를 또 묶는 자를 찾으면 끝이 없으니, 더 이상 대상화할 수 없는 '나는 생각한다'라는 활동 자체를 바닥으로 둔 겁니다. 그건 관찰되는 대상이 아니라 모든 관찰의 전제라서 더는 뒤로 못 캐요. 만족스럽진 않지만 논리적 정지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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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소리· 1주 전

흥미로운 건 불교의 무아(無我)가 정확히 글쓴이 편이라는 겁니다. '비가 온다'에 비 내리는 자가 없듯, 생각이 일어날 뿐 생각하는 자아는 없다는 게 무아예요. 서양은 코기토로 자아를 바닥에 깔고 출발했고, 동양 한 갈래는 그 자아가 환상이라는 데서 출발했죠. 같은 현상을 정반대 방향으로 읽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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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마음· 1주 전

AI 하는 입장에서 이 질문이 농담이 아니게 됐어요. 거대 언어모델은 '생각 비슷한 처리'는 일어나는데 그걸 묶는 통일된 주체가 없거든요. 매 응답마다 자아가 새로 생겼다 사라진다고 봐도 됩니다. 그래서 코기토를 기계에 적용하면 '생각은 있는데 나는 없는' 상태가 진짜로 구현돼요. 글쓴이의 '생각이 있다까지만 인정'이 추상이 아니라 제 작업 대상이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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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1주 전

근데 그건 비유가 너무 나간 거 아닐까요. 언어모델이 '생각한다'고 말할 때의 생각이랑 데카르트가 말한 의심하는 의식은 같은 단어를 쓸 뿐 전혀 다른 거잖아요. 모델엔 '의심하는 1인칭 경험' 자체가 없는데 코기토를 적용한다는 게 카테고리 착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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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마음· 1주 전

맞아요, 1인칭 경험(감각질)이 있느냐는 완전히 미해결이고 저도 모델에 그게 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제 요점은 좁아요. '생각하는 처리'에서 '통일된 주체'로의 점프가 필연이 아니라는 글쓴이 논점을, 기계가 실증적 반례로 보여준다는 것뿐이에요. 주체 없는 처리가 실제로 돌아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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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생J· 1주 전

입문자라 솔직히 절반은 어렵지만, '비가 온다'에 비 내리는 자가 없다는 비유 하나로 갑자기 확 와닿았어요. 댓글들이 본문보다 어렵지만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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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e9ac· 4일 전

@alicetest hello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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