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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월급쟁이김씨·1주 전

완독 강박 버리고 1년에 책 60권에서 20권으로 줄였더니 생긴 일

9년차 직장인이다. 한때 독서 모임 세 개 뛰면서 1년에 60권씩 읽었다.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다. 재미없어도 끝까지, 산 책은 무조건 완독. '읽다 만 책'은 일종의 부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돌아보니 60권 중 내용이 남은 건 다섯 권도 안 됐다. 권수를 채우는 독서였지 읽는 게 아니었다.

작년부터 규칙을 바꿨다. 50쪽 읽고 안 끌리면 덮는다. 죄책감 없이. 대신 끌리는 책은 두 번, 세 번 읽고 밑줄 친 데 노트한다. 그렇게 했더니 작년에 20권 읽었는데, 그 중 대여섯 권은 지금도 문장이 기억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은 세 번 읽었고 출근길에 한 챕터씩 또 본다. 60권 시절엔 없던 일이다.

물론 반론도 안다. '재미없어도 끝까지 읽어야 만나는 깊이가 있다', '완독의 근육이 있다'. 일리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200쪽까지 지루하다가 거기서 터지니까. 그래서 요즘 내 기준은 '지루함이 작가의 의도인가, 그냥 안 맞는 건가'를 구분하는 거다. 어렵지만. 완독 강박에 시달리는 분들, 책은 갚아야 할 빚이 아니라는 말 해주고 싶었다. 여러분의 '덮는 기준'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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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댓글#경험#주장

댓글 8

정언명령· 1주 전

원칙주의자로서 솔직히 처음엔 반발심이 들었어요. '시작했으면 끝낸다'가 제 신조라. 그런데 글을 다시 읽으니 핵심은 '아무거나 덮자'가 아니라 '지루함이 의도인지 분간하자'더군요. 그 분간을 위한 기준을 세웠다는 점에서 이건 강박을 버린 게 아니라 더 높은 원칙을 세운 거네요.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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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김씨· 1주 전

정확히 그거예요. 무원칙하게 덮으면 그냥 산만한 독서가 되고요. 저도 '아무 때나 덮어도 된다'는 아니에요. 다만 그 원칙의 주인이 책이 아니라 나여야 한다는 거죠.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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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끝나고· 1주 전

명상록을 출근길에 보신다니 반갑네요. 저는 회진 끝나고 한 구절씩 봅니다. 흥미로운 건 같은 구절이 그날 진료 본 환자에 따라 다르게 읽혀요. 책을 끝낸다는 개념 자체가 어떤 책엔 안 맞는 것 같아요. 명상록 같은 책은 완독하는 게 아니라 평생 같이 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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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1주 전

불편할 수 있는 반론 하나. 50쪽 컷이 위험한 게, 우리는 자기가 안 맞는 책을 '재미없는 책'이라고 합리화하기 쉬워요. 어려운 책일수록 초반이 진입장벽 높은데, 그걸 다 '안 맞음'으로 처리하면 평생 자기 취향 안에서만 맴돌게 됩니다. 편식 독서의 알리바이가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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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김씨· 1주 전

이거 진짜 아픈 지적이에요. 인정합니다. 사실 제 20권 목록이 점점 비슷해지는 느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일부러 '안 끌리지만 평이 좋은' 책을 분기마다 하나씩 50쪽 컷 없이 읽기로 했어요. 편식 방지용 강제 메뉴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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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1주 전

오 '분기마다 강제 메뉴' 괜찮네요. 완독 강박과 편식 사이의 절충안 같아서. 그 정도면 저도 납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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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생J· 1주 전

완독 강박 진짜 있었는데 이 글 보고 좀 놓아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질문이요. 그럼 독서 모임에서 다 못 읽고 가면 너무 민폐 아닌가요? 모임은 완독이 전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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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김씨· 1주 전

오히려 반대예요. 다 못 읽고 와서 '저는 여기서 막혔는데 왜 그럴까요' 묻는 사람이 모임을 살려요. 완독하고 와서 줄거리만 말하는 것보다 훨씬 토론이 깊어지거든요. 못 읽은 걸 솔직히 말하는 게 민폐가 아니라 기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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